언론보도

  • 2026-06-06

06.06 [공연리뷰] 고전주의자가 격파한 말러의 심연 - 요엘 레비와 KBS교향악단의 '교향곡 6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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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이효사진.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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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서울]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 =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한국 공연장에서 말러 교향곡들이 자주 연주되고 있는데, 이 가운데 6번만큼은 결코 자주 연주되기 힘든 여러 조건들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도 방대한 규모와 높은 연주 난도가 가장 중요한 요인일 텐데, 그러한 만큼 이 작품이 연주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손꼽을 만한 중요한 이벤트로 여겨진다. 2026년 상반기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두 악단, 서울시향(얍 판 츠베덴 지휘)과 KBS 교향악단(요엘 레비 지휘)이 이 작품을 비슷한 시기에 연주를 하여 큰 관심을 끌었다. 연주 스타일이나 해석의 방향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여준 두 지휘자의 리더십이 돋보였는데, 특히 레비와 KBS 교향악단의 경우 2019년 이후 두 번째로 선보인 연주인 만큼 완성도에 있어서 괄목할 만한 변화를 이끌어내어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


첫 곡은 이혁과 이효 형제가 협연자로 등장한 풀랭크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최근 명성을 높이고 있는 듀오답게 명징한 리듬과 깔끔한 소노리티를 바탕으로 모차르트와 라벨을 합쳐놓은 이 즐거운 협주곡을 보다 젊고 건강하게 만들어냈다. 1악장에서의 복리듬의 향연과 피날레 카덴차의 아름다운 음향은 훌륭했고, 2악장의 단아하면서도 감각적인 오마주 또한 흠잡을 데 없이 건강했다. 앞으로 이 듀오가 펼쳐낼 레퍼토리의 확장에 기대를 걸어본다. 


1부와는 사뭇 다르게 말러 <교향곡 6번>을 위해 포디움 위에 올라선 레비는 오케스트라의 하나부터 열까지를 일사불란하게 통제하며 음악감독 시절에 보여주었던 것 이상의 완성도와 감동을 이끌어냈다. 특히 지나칠 정도로 디테일을 강조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페달을 완전히 밟은 듯한 육중한 질감도 아닌, 선명한 내선율과 적절한 화성적 볼륨감의 조화를 통한 지극히 전통적이면서 웅장한 오케스트라 사운드의 전형에 의거한 말러의 웅대한 세계를 선사해주었다.


1악장 제시부부터 오케스트라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연주를 선보였는데, 행진곡 템포를 연상케 하는 템포도 훌륭하고 선율의 흐름은 깨끗하게 유려하며 알마의 주제(2주제) 또한 호소력 짙은 고양감이 배어나왔다. 무엇보다도 클라리넷(채재일 객원)의 구슬프면서도 아름다운 노래가 감동을 배가시켰는데, 이러한 수석들의 활약으로 인해 레비의 해석이 지나치게 매끈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을 법했다. 왜냐하면 순간순간들의 황홀경으로 인해 이 악장에서 표현되어야 하는 집요한 처절함 혹은 신경질적인 강박이 순화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극단적인 감각주의나 실험적인 사운드를 지양하는 고전주의자로서 레비의 철저한 균형감각과 절제된 표현력을 우선하는 위대한 음향 건축물을 지향한 결과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더 나아가 번스타인이나 텐슈테트로 대변되는 초감각주의와 20세기 현대 지휘자들이 성취해낸 모더니즘의 교집합 부분이랄까, 그의 멘토였던 조지 셸이 추구했을 법한(레코딩으로나마 유추할 수 있는) 고전주의적 심포니스트의 정점인 말러의 음항세계가 새로이 재현된 듯한 감동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저 먼 세계로 떠나는 듯 투명하고 서정적인 악장의 중반부는 흐드러짐보다는 놀라울 정도로 정제된 탓에 템포나 표현이 극단적인 연주에서 느낄 수 있는 것보다 더 깊은 슬픔과 우수가 배어나왔다. 그렇기에 피날레로 향할수록 암흑의 기저까지 파고들었다기보다는 그 거대한 불협화적인 아포지아투라(appoggiatura)가 안젤름키퍼의 두텁지만 날카로운 질료의 질감을 연상시킬 정도로 음향에 상처를 내며 작품에 대한 인식을 반추하게끔 유도한다. 이에 이어지는 안단테 악장은 구조적으로 훌륭한 거울대비로서 레비만의 개성적인 터치를 통해 차갑지만 아름다운 균형의 묘가 발산되었다. 특히 바이올린의 특징적인 상승 글리산도는 더욱 거칠고 깊으며 예리한 금속성 붓질처럼 움직이며 비극적인 주체의 슬픔을 ‘울먹이지’ 않고 ‘내뱉어내게’ 만들었다. 이러한 레비의 해석으로 인해 트리오 부분은 지나칠 정도로 단정하게 처리된 탓에 극적이지 못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과장되거나 어색한 루바토보다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충만한 음향 속에서 일종의 침묵의 회색을 느낄 수 있는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레비의 안단테 모데라토 악장은 본질적인 어두운 음악으로서 <교향곡 5번>의 아다지에토와는 전혀 다른, 거세된 아름다움만이 표현할 수 있는 창백한 슬픔이 피어난 경이로운 장면이었다. 


묵시록적인 파멸이라기보다는 파멸의 균열(햄머가 암시하는)이 야기하는 '차원전이적 종말'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레비의 마지막 악장은 불안한 행진과 두 차례의 천둥 같은 망치 타격이 어우러지며 청중의 감정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그 와중에 교향곡 전체를 하나의 완결된 비전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 레비는 치밀한 추진력과 논리적인 전개를 앞세워 이 죽음이 드러워진 기나 긴 드라마에 넓고 풍성하고 영롱하며 극적인 음향을 꼼꼼히 채워넣었다. 카우벨을 무대 뒤에서 멀리 느껴지게 연주하여 이 시그널이 의도한 무의식적인 암시의 효과를 잘 구현한 점, 음향적으로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햄머의 타격, 그 외 타악기들의 맹활약 등등도 이 마지막 악장을 위대한 순간으로 장식한 일등공신임이 분명하지만, 무엇보다도 전임 음악감독의 권위와 카리스마를 온전히 인정한 듯한 현악과 관악 단원들의 맹렬한 일체감이야말로 이번 공연에서 보여준 KBS 교향악단의 진정한 가치라고 극찬할 만하다. 



출처 : 더프리뷰(http://www.thepreview.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