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플] 피에타리 잉키넨, KBS교향악단 새 음악감독에 거는 기대
조성진 기자 corvette-zr-1@hanmail.net
사진제공=KBS교향악단
▶ 핀란드 음악교육의 또다른 성공 사례
▶ 에사페카 살로넨 이래 독보적 시벨리우스
▶ 바그너·말러도 높은 평가
▶ 과장하지 않는 음악적 진정성, 감수성 돋보여
▶ KBS교향악단 단원들 반응도 호의적
▶ “새롭고 활력 넘치는 KBS교향악단 기대”
▶ 임기 첫 해엔 6회만 지휘…점차 늘릴 예정
▶ 부족한 단원 수 확충에도 신경 써야
▶ 이탈리아 오페라/성악 및 현대음악까지
▶ 지휘자로서 레퍼토리 외연 확대 필요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핀란드 출신의 젊은 지휘자 피에타리 잉키넨(41)이 제9대 KBS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선임됐다. 이로써 피에타리 잉키넨은 2022년 1월 1일부터 2024년 12월 31일까지 3년간 KBS교향악단을 이끈다.
세계적 지휘자 양성소인 헬싱키 시벨리우스 아카데미에서 지휘를 전공한 잉키넨은,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NDR 함부르크, SWR 슈투트가르트, 뮌헨필하모닉, BBC필하모닉, LA필하모닉 등등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했고, 2025년 6월까지 도이치방송교향악단 수석지휘자 및 재팬 필하모닉 수석지휘자까지 겸임한다. 뉴질랜드심포니 명예 지휘자로도 활동 중이며 이외에 체코 프라하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 뉴질랜드심포니 음악감독을 역임하기도 했다. 잉키넨은 또한 4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해 현재까지도 명 바이올리니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LA 타임즈(로스앤젤레스 타임즈)가 지적했듯이 잉키넨은 “핀란드의 멋진 음악교육의 또 다른 성공 사례”다.
피에타리 잉키넨의 KBS교향악단 음악감독 선임 보도가 나간 직후 일본 매체 중 하나인 ‘재팬아트’는 “1956년에 설립된 KBS교향악단(원문에선 ‘KBS 라디오 오케스트라’로 표기)은 아시아 최고의 오케스트라 중 하나로, 잉키넨이 도이치방송교향악단과 함께 녹음한 음반은 그의 국제적 위상을 잘 보여준다”고 썼다.
사진제공=KBS교향악단
잉키넨은 2006년과 2008년, 그리고 2020년까지 3차례 KBS교향악단을 지휘했다. 또한 오는 12월 24일(금)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릴 KBS교향악단 제773회 정기연주회에서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지휘한다.
KBS교향악단 관계자에 의하면, 여러 악단의 수석 지휘 및 객원 활동을 해오고 있는 잉키넨인만큼 3년 임기가 시작되는 첫해인 2022년엔 KBS교향악단을 6회만 지휘할 예정이지만 다음 해엔 좀 더 지휘 횟수를 늘릴 예정이다.
음악감독 잉키넨에 대한 KBS교향악단 단원들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몇 차례 협연을 하는 가운데 신뢰도 쌓였음은 물론 젊고 의욕적인 잉키넨과의 소통도 잘되는 편이라고 알려져 있다.
KBS교향악단 관계자는 기자에게 “피에타리 잉키넨은 젊은 지휘자로서의 참신함과 동시에 음악적 깊이를 겸비한 지휘자”라며 “젊은 피와 열정, 그리고 풍부한 경험이 어우러져 새롭고 활력 넘치는 KBS교향악단을 만들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피에타리 잉키넨은 말러, 차이콥스키 등 유명 작품에서 감정을 엄격하게 통제할 줄 안다. 젊은 나이와는 달리 구식(옛날) 방식으로 흥분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재능도 있다. 짧은 시간 동안 이미 많은 것을 성취한 지휘자다. 자신의 역량과 더불어 시간이 지나며 음악의 성숙 또한 더욱 대단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제공=KBS교향악단
무엇보다 잉키넨은 시벨리우스 지휘에선 이 분야 ‘레전드’로 평가받는 그 어떤 명 지휘자들을 능가할 만큼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미국의 온라인 클래식 일간 ‘클래식 투데이’는 “피에타리 잉키넨은 초기의 낭만적인 작품에서 보여준 것보다 시벨리우스 후기의 희귀한 질감과 분위기에 훨씬 더 강한 친화력을 갖고 있다”고 썼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즈(LA타임즈)는 “에사페카 살로넨 이래 ‘핀란디아’를 이처럼 지휘한 사람은 거의 없다. 잉키넨은 대담하고 스릴 넘치는 오케스트라 사운드(풍부한 현악기, 타오르는 금관악기와 날카로운 타악기)를 제공한다. 그는 마치 세이버처럼 코드를 날카롭게 자르는 주빈 메타 트릭을 마스터했다. 이것은 애국적인 ‘핀란디아’”라고 비평할 정도다.
바그너, 브람스 등 독일 작곡가의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다. 특히 시간이 지날수록 바그너 전문 지휘자의 명성을 더해가고 있다. 2013년 가을,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 처음 공연한 바그너 ‘링 사이클’로 국제 언론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공연은 4일이 걸렸을 뿐 아니라 마지막 오페라는 5시간 러닝타임의 엄청난 작업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클래식 음악 월간지 ‘라임라이트’는 2020년 잉키넨의 바그너 지휘에 대해 “바그너 전문가인 그는 오케스트라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있고 풍부하고 오르간 같은 사운드를 그렸다”고 평했다.
사진제공=KBS교향악단
잉키넨은 시벨리우스 아카데미 재학시절 선생님이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지휘하는 걸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아 바그너를 집중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현지 인터뷰에서 자신이 지휘자로서 경력을 쌓아가는데 “바그너야말로 가장 매력적이고 보람 있는 단계였다”고 언급한 바 있다.
잉키넨은 말러 연주에서도 시간이 지나며 더욱 정교한 접근을 보이고 있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디언’은 2019년 11월 런던과 게이츠헤드에서 있은 잉키넨의 말러 3번 공연에 대해 “그의 스타일은 차분하고, 강력한 앙상블과의 파트너십은 고도로 훈련됐으며 절제된 접근방식을 보여준다. 특히 잉키넨은 느린 피날레에서, 음악의 표현력이 엄청나게 강렬하며 오프닝 때와 동일한 세심한 제어를 통해 폭발적이지 않고 절정에 이르렀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반면 같은 공연에 대해 ‘더 타임즈’는 별 세 개(5개 만점)로 칭찬을 아꼈다.
잉키넨은 그 자신이 유능한 바이올린 연주자이기도 한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간 여타 악기보다 바이올린 협연이 특히 많았다. 다른 악기 연주자들과의 다채로운 협연도 좀 더 많이 보고 싶다.
또한 잉키넨이 그동안 자신있게 내세운 레퍼토리 상당수는 독일을 중심으로 하는 작곡가 작품이다. 바그너만이 아니라 베르디 오페라를 비롯한 이탈리아 전반의 오페라/성악 작품에서 프랑스 예를들어 드뷔시, 라벨 등 다른 작곡가까지 고르게 소화하며 외연을 확장하는 모습도 기대해 본다.
그는 몇 년전 LA에서 라벨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협연 레온 플레이셔)을 무대에 올렸다.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그곳 유력지 LA 타임즈는 “잉키넨과 플레이셔는 서로, 그리고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라벨과도 상충되는 이상한 커플을 연출했다.…잉키넨은 참을성이 없는 반주자임을 증명했다. 그는 플레이셔를 기다렸지만 가능할 때마다 앞으로 나아갔고, 수수께끼 같은 라벨리안 분위기를 단호하게 피해 갔다”고 혹평했다.
사진제공=KBS교향악단
현대음악에 대한 비중도 적은 편이다. 물론 잉키넨의 현대음악 지휘 빈도수는 적지만 퀄리티는 매우 높게 평가받고 있다. 지난 2020년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SSO)를 이끌고 연주한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이 좋은 예다. 잉키넨의 스트라빈스키 지휘에 대해 ‘라임라이트 매거진’은 이렇게 리뷰했다.
“그간 ‘봄의 제전’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수히 많이 연주됐다. 하지만 이번 콘서트에서 이 작품은 잉키넨의 뛰어난 손에서 여전히 흥미진진한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Dance of the Young Girls’에서 드라이빙 스트링 액센트의 명확성을 잃지 않고, 타악기는 유연하고 근육질이었다. ‘Spring Rounds’의 저음 현은 1부 말미에 음악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원초적인 중력을 지녔다. 오케스트라도 전체적으로 화려한 형태를 띠고 있었고 아름답고 벨벳 알토 플루트 순간과 격렬하고 거친 브라스의 외침이 있었다.”
지휘자 박상현(모스틀리 필하모닉 음악감독)은 “잉키넨은 이제 41살의 젊은 나이임에도 표현력이나 음악적 깊이로 볼 때 놀라운 잠재력의 소유자로 특히 시벨리우스, 바그너 및 독일 작곡가 전반에 대한 해석이 탁월”하다고 했다. 또한 박상현 감독은 “빼어난 감수성을 지닌 잉키넨같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지휘자가 새로이 수장으로 온 만큼 KBS교향악단은 향후 부족한 단원 수 확충에도 신경을 써가며 더욱 뛰어난 악단으로 존재감을 드높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휘자 정치용 교수(한예종)는 기자에게 “단 한 차례 그의 공연(브람스 교향곡 1번과 ‘비극적 서곡’)을 봤기 때문에 뭐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매우 성실한 지휘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치용 교수는 “지휘자는 등 뒤에 있는 사람들(관객)보다 앞에 있는 사람들(단원)한테 더 충실해야 하지만 젊은 지휘자들의 경우 관객에게 좀 더 멋지게 보이고자 오버(과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그런데 잉키넨은 이제 40을 갓 넘은 젊은 지휘자임에도 과장하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음악을 이끌어가는 진정성이 보입니다. 물론 아직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이라고 덧붙였다.
원본 출처 : https://m.hankooki.com/m_sp_view.php?WM=sp&WEB_GSNO=6858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