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01.27 [문화일보] ‘2025 클래식 신년음악회’ 첼로 김두민의 땀, 바이올린 이현정의 영감

  • 2025-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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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클래식 신년음악회’ 첼로 김두민의 땀, 바이올린 이현정의 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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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신년음악회 시즌이 거의 마무리되고 있다. 1월 1일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빈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를 시작으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서울시립교향악단, 각종 문화재단과 지방자치단체의 신년음악회가 진행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이후 갈수록 엄중해지는 정치 상황 속에서도 차분하게 새해를 맞이하려는 클래식 음악계의 ‘전통’은 유지됐다.

 

을사년 새해의 기운도 받고 대한민국 헌정사 초유의 사건들이 주는 충격으로부터 잠시 벗어나기 위해 지난 11일 ‘2025 대원문화재단 신년음악회’(대원 신년음악회)와 18일 ‘마포문화재단 신년음악회 2025’(마포 신년음악회)에 다녀왔다. 유일한 휴일인 토요일을 온전히 할애해야 하는 강행군이었지만 바이올린과 첼로, 플루트와 오보에의 선율에 큰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둘 다 KBS 교향악단 연주했다.

 

◇대원 신년음악회: 땀으로 완성한 김두민의 첼로

 

대원 신년음악회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렸다. 대원홀딩스를 모기업으로 하는 대원문화재단(이사장 김일곤)은 2004년 출범했다. "음악을 사랑하는 순수한 열정으로 진정한 메세나의 가치를 이룬다"는 미션 아래 꾸준히 클래식 음악과 음악인들을 지원해왔다. 대원 신년음악회는 그 일환으로 2018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6회째를 맞았다.

 

이스라엘 출신의 명지휘자 요엘 레비가 지휘봉을 잡았고 바이올린 임지영, 첼로 김두민, 피아노 김대진이 협연했다. 프로그램은 베토벤 삼중 협주곡 C장조, Op.56과 시벨리우스 교향곡 제2번 D장조, Op.43이었다. 클래식 공연에서 바이올린과 첼로, 피아노가 동시에 참여하는 삼중 협주는 매우 드물다. 특히 그게 베토벤의 곡이라면 더욱 그렇다. 임지영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시절이던 2015년 벨기에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출전해 한국인 최초로 기악 부문 1위에 입상한 바이올리니스트다. 지난해엔 연세대 음대에 최연소 교수로 임용돼 강의와 공연을 병행하고 있다. 김대진은 한예종의 현 총장이다. 김선욱, 손열음 등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길러낸 교육자로 명성이 더 높다. 김두민은 독일 뒤셀도르프 심포니 오케스트라 첼로 수석을 거쳐 현재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3명의 교수 출신 연주자가 각기 다른 악기로 빚어내는 베토벤의 삼중 협주곡은 조화와 충돌의 선율을 자아냈다. 서로 응답하듯, 때론 서로 경쟁하듯 현을 켜고, 건반을 짚었다. 배려 깊고 존중하지만 치열했다. 그중에서도 첼로 김두민의 연주가 눈과 귀에 들어왔다. 그는 베토벤과 시벨리우스의 곡을 마치 손이 아니라 머리로 연주하는 것 같았다. 부드럽고 우아한 첼로의 소리도 아름답지만 머리로 박자를 맞추며 풍부한 표정을 만들어내는 제스처가 동시에 와 닿았다. 안단테(느리게)에선 몽환적으로, 알레그로(빠르게)에선 전투적으로 표정과 리듬을 바꿨다. 표정만으로도 그가 음악을 어떻게 느끼고 있고,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려고 하는지를 읽을 수 있었다. 뽀송뽀송하던 앞머리는 2시간여의 공연 후엔 완전히 땀으로 범벅이 돼 있었다.

 

◇마포 신년음악회: 13세 최연소 콩쿠르 입상 영재 이현정의 바이올린

 

마포 신년음악회는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개최됐다. 2008년 출범한 마포문화재단(대표 송제용)은 지난 17년간 지역민과 소통하며 마포구를 넘어 서울 서북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예술 중심지로 성장했다. 특히 2020년 하반기 대극장 리모델링을 통해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지휘자만 김광현으로 바뀌었을 뿐 KBS 교향악단이 연주를 맡았다. 여기에 소프라노 한경미, 바리톤 양준모, 그리고 바이올리니스트 이현정이 함께했다.

 

프로그램은 대원 신년음악회보다 좀더 다양하고 대중 친화적이었다. 차이콥스키의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 중 ‘폴로네이즈’로 시작해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35를 선보인 후 인터미션 후에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천둥과 번개 폴카’와 오페레타 ‘박쥐’ 서곡, 푸치니의 오페라 ‘잔니 스키키’ 중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라라의 ‘그라나다’, 가곡 ‘강 건너 봄이 오듯’, 창작가곡 ‘여우볕’, 레하르의 오페레타 ‘유쾌한 미망인’ 중 ‘입술은 침묵하고’ 등 교향곡과 오페레타, 가곡을 오가며 다양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지휘자 김광현은 정열적이면서도 절도 있는 제스처, 그리고 관객을 바라보며 박수의 강도를 지휘하는 임기응변으로 많은 호응을 이끌어냈다. 한경미는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고음의 음색으로, 양준모는 외모만큼이나 중후하고 안정적인 보이스로 갈채를 받았다.

 

그런데 더욱 눈에 띄는 건 예원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10대 바이올리니스트 이현정이었다. 그는 만 13세의 나이에 최연소로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에서 준우승한 영재다. 이번에는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35를 오롯이 홀로 연주했다. 아직은 왜소한 체격에 앳된 얼굴이었지만 바이올린 현 위에 활을 얹는 순간, 넓은 무대를 당당함으로 가득 채웠다. 아마도 수없는 노력의 결과일 터. 관계자들은 이현정의 천재성에 감탄하면서도 "사실은 집에 방음장치를 하고 매일 연습을 할 정도"로 ‘연습벌레’임을 인정했다.

 

신년음악회에서 만난 김두민과 이현정은 30년이 넘는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정점에 선 음악예술인으로서 똑같은 가치를 보여줬다. 그것은 1%의 영감이나 천재성이 아닌, 99%의 땀이라는 것을. 김인구 기자

 

 

김인구 기자

출처: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25012701039912179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