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원의 울림] 클래식 전설들 올해 한국에 집결 K오케스트라 빛낸다
러시아 피아노 거장 레온스카야
5월 KBS 교향악단과 무대 올라
비르살라제, 韓 악단과 첫 협연
슈만 피아노 협주곡으로 호흡
베를린필 비올라·호른 수석 내한
각각 경기필·서울시향과 공연
한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와 세계적 거장이 함께 그릴 클래식의 정경은 어떤 모습일까. 올해 서울시립교향악단, KBS교향악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등이 살아 있는 전설과의 풍성한 협주를 예고하고 있다.
대형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 갈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보통 지휘자와 프로그램(연주곡)이지만, 협연자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악단마다 연주자 섭외를 담당하는 기획·사업부는 최소 2~3년 단위를 앞서 보며 레이더망을 켠다. 종종 티켓 파워와도 직결된다. 클래식계 아이돌급 인기를 누리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임윤찬이 협연한다면 매진은 떼 놓은 당상이란 얘기가 공공연히 돈다.
관객 입장에선 협연자가 누구냐에 따라 거장 연주자의 음악 세계를 엿볼 기회가 되기도, 차세대 신예 연주자를 발굴하고 익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독주회에서와는 또 달리 웅장하고 다채로운 공연의 묘미도 즐길 수 있다. 올해는 어떤 기회가 펼쳐질까.
우선 화려한 피아니즘 거장들의 협연이 기대를 모은다. 5월 KBS교향악단 정기공연에 러시아가 낳은 거장 엘리자베트 레온스카야(80)의 그리그 협주곡 가단조 Op.16 연주가 예정돼 있다. 지난해 이 악단과 처음 호흡을 맞춘 세계적 지휘자 미하엘 잔덜링도 함께다. 잔덜링과 레온스카야가 지난해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슈만·그리그 협주곡 음반을 워너클래식 레이블에서 선보인바, 거장들의 실황 연주를 국내에서 들을 기회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도 3인 3색 피아노 협연을 예고했다. 3월 루이스 로티(66)의 생상스 피아노 협주곡 5번 '이집트', 7월 폴 루이스(53)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에 이어 12월엔 '러시아 피아니즘 대모'로 불리는 거장 엘리소 비르살라제(83)의 슈만 피아노 협주곡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특히 비르살라제는 1962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3위에 오르며 여성 연주자 최초 입상 기록을 세웠고, 세계적 권위의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해온 권위자다. 국내 악단과의 협연은 처음이다.
서울시향은 11월 27~28일 '건반 위의 시인'으로 예술가들의 존경을 받는 피아니스트 이매뉴얼 액스(76)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관·현악 주자들 협연도 잇따른다. 먼저 베를린 필하모닉 소속 주자들이 내한한다. 경기필하모닉은 5월 베를린필 비올라 수석 아미하이 그로스와 협연한다. 예술감독 김선욱 지휘로 우리나라 현대 작곡가 신동훈의 '실낱 태양들'을 아시아 초연하는 무대다. 또 서울시향의 8월 정기공연에는 베를린필 호른 수석이자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호른 수석도 겸임하는 중국 출신 윤 젱의 협연 무대가 마련됐다. 루트 라인하르트 지휘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호른 협주곡 1·2번을 들려준다. 이 밖에 9월엔 세계적 수준의 기교를 보유한 바이올리니스트 빅토리아 물로바(66)가 국립심포니와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다.
거장 연주자의 한국행은 지휘자들의 역량과도 무관치 않다. 한 공연장 관계자도 "협연자 섭외에는 지휘자의 입김은 물론 기획·사업 파트의 역량 등 많은 요소가 개입된다"고 귀띔했다. 앞서 잔덜링과 레온스카야 사례처럼 음반 녹음, 투어 등으로 신뢰도가 높은 경우 함께 움직이거나 초청에 응하기 쉽다. 경기필과 함께할 베를린필 비올리스트 그로스의 경우에도 2020년 김선욱의 피아노 연주로 '슈베르트, 쇼스타코비치 & 파르토스' 음반을 낸 인연이 있다. 신예를 발굴하고 동시대 음악을 관객에게 전한다는 점에서도 협연자 면면은 중요하다. 국립심포니는 첼리스트 카미유 토마(37)와의 6월 무대에서 그가 현대 작곡가 파질 사이에게서 헌정받은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를 협주한다. '트럼펫 차세대' 마틸다 로이드(30)와 함께하는 하이든 협주곡도 11월 선보인다. KBS교향악단은 10월에야 결정될 제19회 쇼팽국제피아노콩쿠르 우승자와 11월 21일 롯데콘서트홀에서 협연한다. 5년마다 열리는 세계 최고 권위의 피아노 대회로, 스타 탄생 한 달 만에 국내에서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밖에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솔리스트 김봄소리·임지영·박재홍(서울시향), 한재민·선우예권(KBS교향악단), 클라라 주미강·조성진(경기필) 등의 협연 무대도 기대를 모은다.
다양한 협연 라인업에 대해 국립심포니 관계자는 "노장과의 연주에선 이들이 가진 넓은 시야와 깊이 있는 해석을 통해 악단과의 음악적 시너지를, 신예와의 연주에선 동시대적 호흡을 기대하고 있다"며 "관객들에게도 다양한 음악을 들려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정주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