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모차르트' 만난 韓거장 지휘자…'연륜과 순수'의 하모니
정명훈·후지타 마오, 예술의전당서 협연…음악의 본질적 힘 선사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지난 2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KBS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는 한국 클래식의 상징과도 같은 지휘자 정명훈(72)과 일본 차세대 피아니스트 후지타 마오(27)의 환상적인 호흡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둥근 얼굴에 소년 같은 표정으로 무대로 들어선 마오는 연주 시작과 동시에 객석을 압도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5번' 1악장의 긴 서주가 끝나고 등장한 마오의 피아노 소리는 웅장하면서도 맑고 투명했다. '동양의 모차르트'로도 불리는 마오의 연주는 모차르트가 어린 시절 연주했을 법한 순수한 울림을 그대로 옮겨왔다는 평가를 받을 만했다.
마오는 1악장 말미에 직접 작곡한 카덴차(cadenza. 협주곡 등에서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멈추는 동안 협연자가 연주하는 즉흥곡)를 선보여 관객을 깜짝 놀라게 했다. 바로크적 색채와 낭만적 감성이 어우러진 화려한 변주곡으로, 마오 특유의 맑고 순수한 감성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정명훈도 잠시 지휘를 멈추고 몸을 돌려서 마오의 연주를 한참 동안 지켜봤다.
본 연주가 마오의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면, 앙코르 연주에선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서의 한껏 여유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마오가 연주자들이 가장 꺼린다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6번' 1악장을 폭발적인 속주로 연주해내자 객석에선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마오가 달궈놓은 공연장 분위기는 정명훈과 KBS 교향악단의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 연주로 더욱 뜨거워졌다. 광적인 사랑과 절망, 환각과 죽음을 다룬 작품으로 낭만주의 교향곡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도입부는 다소 어수선했다. 객석에서 울린 휴대전화 벨 소리에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이 다소 흔들리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다행히 2악장에 들어서면서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3악장에서 잉글리시 호른과 오보에가 메아리처럼 교차하며 흐트러진 분위기를 정돈했고, 말미에 팀파니가 긴장을 고조시키며 극적인 전환을 만들어냈다. 3악장 연주가 워낙 강렬했던 탓에 일부 관객이 아직 공연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손뼉을 쳐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연주의 절정은 '단두대의 행진'으로 불리는 4악장과 '마녀들의 밤'이라는 부제의 5악장이었다.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음울한 선율 위로 바순의 기묘한 소리가 얹혔고, 금관과 타악기가 폭발적인 에너지를 분출했다.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지는 순간을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관객의 숨소리조차 멈추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두 음악가의 만남은 단순한 협연을 넘어 음악이 지닌 본질적인 힘을 보여줬다. 순수한 청년의 피아노와 원숙한 거장의 지휘가 어우러지면서 관객들도 모처럼 소리와 함께 움직이고 호흡하며 음악에 진심으로 몰입하는 시간을 가졌다.
임순현 기자
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250831027100005?input=1195m